Tuesday, August 16, 2011

Storm warning이 나면 피해야 한다. 어디로? 일단은 집으로.


지난 주 토요일.
날씨가 하도 청명해서 오랫만에 OK family와 바베큐를 하기로 했다. 토토로형네랑 절친인데 이번 방학동안 서로 바빠서 바베큐를 한 번도 못 했다.
진짜 날씨가 좋았다....
열심히 파를 자르고, 새우를 씻고, 얼음도 얼리고 해서 아이스박스에 넣고 저녁 6시쯤 집 앞 공원으로 나섰다. 걸어서 2분.

저어기 서쪽 하늘이 약간 흐리다. 비가 오려나. 스맛폰으로 검색을 하니 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는데.. 빨간색이다. 흠. 근데 구름이 넓지 않고 좁다. 금방 지나갈 것 같다.

그래서 쉘터 밖에 차려놓았던 식탁을 쉘터 밑으로 치웠다.
그리고 완벽하게 구워진 고기를 맛있게 냠냠.. 하는데, 구름이 도착.
그리고 바람도 도착. 바람이 좀 부네.. 애들도 추워하고 OK 가족들도 추워한다. 우리 집으로 들어가잔 이야기가 나왔는데, 식탁 가득한 음식을 보면서 모두들 약간 주저한다.

그래서 나는 집으로 가서 얼른 애들 Sweatshirts들을 챙겨 나왔다.

그런데.. 비가 오기 시작하고 바람이 마구 불기 시작하더니
정말 미친듯이 몰아치더니
쉘터 안에 있는데도 비를 그냥 물대포를 맞듯이 맞았다. 정말 물대포.
급하게 가방 안에 챙겨 넣어든 짐들이 흔들리고 우산은 이미 회생불가. 압력솥이 바람에 날아가려고 한다. 으헉. 애들은 소리 지르고... 이건 뭔 시추에이션? 정말 뭥미다.
그때 꽈광, 뿌직. 우리 앞으로 나무 더미가 떨어진다. 헉. 내 정신은 그때 나갔다. 바람인지 벼락인지 때문에 나무가 뿌러지고 물대포 뿌려대고 애들은 소리 지르고 ....

비가 잦아들것은 알았지만, 거기 있는 것은 아닌것 같았다. 모두들 집으로 피신. 그 와중에 OK 자매는 넘어져서 안고 있던 귀염둥이 T등에 슬픈 상처가.. 흑흑.. 뱃 속의 EK야 제발 무사해라....

이 무슨 재난 영화란 말인가!

다음 날 다시 확인해 본 부러진 나무는 가히 상상초월.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이 분명하다. 교회 식당 테이블 두개 정돈 줄 알았는데.. 퍼듀 빌리지 거실 사이즈 정도? 이거 맞았으면 아마 지금쯤 '하늘에서 평화' 하고 있을것 같다. 사진은 부러진 부부을 포착하느라 그 크기가 가늠이 안 되지만, 왼쪽의 작은 다람쥐 의자가 3살 정도 아이만한 크기다.

토네이도 워닝이 와도, 스톰 워닝이 와도 워낙 아무 생각 없이 살던 미국 생활. 토요일 이 스톰에 인디폴 state fair stadium이 무너져 4명이 죽었다. 대단한 위력의 스톰.. 우리의 피크닉 재난은 워낙 자연재해에 대해 무감했던 것이 문제인 것 같다. 그리고 스톰이 와도 늘 집안에 있어서 이 정도 인줄 몰랐던, 그래서 우스이 여겼던 교만이 문제였던 것이겠지.

아... 인디애나의 비는 하늘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옆구리를 강타하는 놀라운 물대포. 주일 하루 종일 내 정신은 놀러 나가 버렸었다.

오늘은 돌아오려므나. 정신아.

Monday, August 8, 2011

돌아와라 구글 사전!


내가 젤루 애용하는 사이트중 하나인 구글 사전이 사라졌다!! 엉엉엉.
갑자기 서비스를 중단하고 구글 번역을 이용하란다.
젠장...



서비스를 대체하려면 기존에 제공하던 서비스와 비슷해야 하는것 아닌가?

구글 사전은 관련 웹 내용도 찾을 수 있었고, 왠만한 단어들은 대부분 찾을 수 있었고, 발음 기호도 제공 됐고..


fluorocarbons를 찾다가 기함을..

어쩌란 말이냐. 플루오로 카본.. 읽어주곤 땡이다.. 돌아와라 구글 사전!!



Monday, August 1, 2011

하목사님 편히 쉬세요.

하용조 목사님이 소천하셨다. 한국 시간으로는 8월 2일 아침이고, 미국 시간으로는 8월 1일 저녁이다. 뇌출혈로 수술 받으시고 회복하지 못하고 떠나셨다고 한다.
너무나 갑자기 떠나신 것 같아 황망하게 여겨졌지만, 생각해 보면 이미 오랜 시간을 투병하고 계셨는데 너무나도 잘 이기고 계셨던 것 뿐, 오히려 우리들에게 많은 시간을 준비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셨던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배우 엄지원이 첫 설교를 듣던 때가 기억난다고 했다고 했다. 나도 그렇다.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온누리 교회가 그런 덴지 모르고 9시 예배에 늦게 들어갔더니 복도까지 자리가 없어서 어디 앉아야 하나 두리번 거리며 2층으로 올라가는데 내 귀에 들려오는 설교 내용이............. 내 이야기였다... 그런 설교를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모두 내가 겪고 있는 일이었고, 그것들을 극복해 가는 방법들을 말씀해 주고 계셨다. 그 날로 나는 온누리 교회 예배에 참석해서 등록은 안 했지만 2000년 결혼할 때까지 만 5년이 넘도록 그 곳에서 은혜를 나누어 받았고 결혼해서 신랑 따라 교회를 옮긴 후에도 새벽기도, 화요성령집회, 가끔은 목요 경배와 찬양까지도 다니고 두란노에서 개최하는 여러가지 워크샵도 참석해 내 교회 드나들듯 했다.

마지막 설교를 들었던 것은 2008년 새벽기도 설교. 미국에 와서 인터넷으로 듣고 있었는데, 그 당시 목사님의 건강이 몹시 좋지 않으셨다. 그런데 목사님의 설교는 변해 있었다. 내가 느꼈던 것은, 마지막 당신의 생명 불빛이 몹시도 약해질 때 목사님은 더욱 복음의 본질을 강력히 선포하셨고, 더욱 그것에 집중하고 계신다는 것이었다. 마치 남은 시간을 조금이라도 복음이 아닌 것에는 낭비하지 않기 위해 애태우시는 듯 했던 목사님의 안타까움이 컴퓨터 모니터에서 그대로 뿜어져 나올때 아팠던 마음이 아직도 내 안에 남아있다. 그 때도 목사님의 건강이 너무 좋지 않아 이 곳에서도 걱정하는 이야기들을 많이 했다.

그리고 옥한흠 목사님이 작년 가을에 돌아가시고, 또 이렇게 가을을 앞두고 하용조 목사님이 돌아가셨다. 그 연약한 육신을 가지고 그 분이 감당하셨던 사역을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이제는 그 분에게 평안과 편안을 모두 선사하신 것이란 생각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목사님과 그 분을 우리 시대에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목사님이 하늘에서 하나님과 우리 아빠와 즐겁게 지내시길 바란다.

목사님의 따뜻한 메시지를 첨부해 본다. 모두 용서받을 수 있는 믿음이 허락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