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October 31, 2010

ipad-- 의사소통 장애인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가

AAC -- Augmentative and Alternative Communication
한국에서는 '보완대체의사소통'이라고 불리는 이 개념은 쉽게 말하면, 말소리(Speech)로 의사를 전달하기 어려운 경우에 대신 그림이나, 컴퓨터 등을 이용해 의사소통 수단을 보완하거나 대체하는 전체의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다. 유명한 경우로 호킹 박사가 있겠다. 그러나 호킹 박사의 경우는 기술상 하이테크 AAC를 사용하는 경우고, 상상하는대로 이런 것들은 매우 비.싸. 다. .... 한국에서도 역시 비.싸.다...

물론 싼 AAC 수단이 없는 것은 아니다. Picture Communication Symbols (PCS)라고 불리는 그림세트들이 있는데 컴퓨터 프로그램으로도 나오지만, 그림들을 카드로 만들어 일명 찍찍이 (벨크로 테잎)라고 불리는 것을 붙여 책에 붙였다 뗐다 하면서 쓰기도 한다.

(그림 1) PCS 의 예 -- 출처, 구글 이미지

그런데, 이게 모두의 대안일 수 없는 것이 보시다시피 호킹박사 같은 경우는 근육의 힘이 없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기 때문에 카드를 떼었다 붙였다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각자의 상황에 따라 하이테크가 필요할 수도 있고, 로우테크 수단으로 의사소통에 활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AAC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이런 AAC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하이테크 AAC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그리 많이 보지는 못했다. 언제나 이런 문제에는 가격이 많은 이유를 차지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오늘 뉴스 검색을 하다가 흥미로운 기사를 접했다.


뉴욕타임즈 기사 링크

오웬이라는 7살짜리 한 꼬마가 있는데, 이 녀석은 생후 8주만에 Spinal Muscular Atrophy type I을 진단받게 된다. 그후에 근육기능이 심하게 손상되고, 의사소통면에서 다양한 AAC도구들을 시도하게 되지만 의미있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런데 지난 여름ipad를 만나게 되면서 오웬의 의사소통 세계가 달라져 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ipad의 터치감이 굉장히 섬세하고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오웬은 적은 힘으로도 스크린을 터치해서 글을 쓰고 기타줄도 튕겨보고 있다.
내가 가장 흥미롭게 들은 부분은 가격에 관한 것이다.
이 부모는 500불 정도에서 시작하는 ipad가격도 부담스러워 했다는 이야기다.
사실 이것은 현실적이다. 아이가 장애가 있으면 무엇이든 해 주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이겠지만, 아이 셋을 키우면서 모든 것이 마음처럼 되는 것은 아니란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기쁘게도 오웬의 할머니가 600여불하는 ipad를 여름에 사 주었고
오웬은 이번 할로윈에 '한솔로'가 되고 싶다고 썼단다.

그림 2. 한솔로-- 스타워즈 (출처. 구글 이미지)

이런 코스츔을 하고 싶어하기도 하는구나. --;

물론 ipad의 터치감이 예민해서 의도하지 않은 곳이 터치되거나 글씨를 쓰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점도 지적되었다. 그렇지만, 이 재미있는 도구가 어느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인생의 길을 열어주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다.

이런 모바일 도구는 보험이 적용이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어플리케이션에 대해서는 적용이 가능한 경우가 있기도 하단다.
흠. 어플들이 과연 얼마나 하게 될까...
보험이 적용이 된다면 합리적인 가격에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기계를 어떤 방법으로 사용하는 가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처음 ipad를 받았을 때는 굉장히 소비지향적인 기계라 생각했었는데,
지금 보니 테크놀리지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역시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부디 좋은 방향의 연구들이 많이 나와서
의사소통장애인에게 효율적인 도구로써의 영역도 잘 개발되어지길 바란다.



조선 다시 보기 (500년 조선의 힘)

길지만 읽어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여겨 퍼왔습니다.
조선이 500년을 이어온 힘이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그 힘을 지금 어떻게 하면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내용입니다.
우리나라는 기록이 없다고 생각해왔었는데 그것보다는 한문으로 된 기록을 번역하고 연구하는 일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단 걸 알았네요.


허성도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의 강연 녹취록

사단법인 한국엔지니어클럽
일 시: 2010년 6월 17일 (목) 오전 7시 30분
장 소: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 521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 2층 국화룸

저는 지난 6월 10일 오후 5시 1분에 컴퓨터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우리 나로호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여기에 계신 어르신들도 크셨겠지만 저도 엄청나게 컸습니다. 그런데 대략 6시쯤에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7시에 거의 그것이 확정되었습니다. 저는 성공을 너무너무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날 연구실을 나오면서 이러한 생각으로 정리를 했습니다. 제가 그날 서운하고 속상했던 것은 나로호의 실패에도 있었지만 행여라도 나로호를 만들었던 과학자, 기술자들이 실망하지 않았을까 그분들이 의기소침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더 가슴 아팠습니다. 그분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더 일할 수 있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어떻게 이것을 학생들에게 말해 주고 그분들에게 전해 줄까 하다가 그로부터 얼마 전에 이런 글을 하나 봤습니다.

1600년대에 프랑스에 라 포슈푸코라는 학자가 있었는데 그 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 그러나 큰 불은 바람이 불면 활활 타오른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저는 우리의 우주에 대한 의지가 강열하다면 또 우리 연구자, 과학자들의 의지가 강열하다면 나로호의 실패가 더 큰 불이 되어서 그 바람이 더 큰 불을 만나서 활활 타오르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 그런데 이 나로호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러한 것도 바로 우리의 역사와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실패가 사실은 너무도 당연하고 우리가 러시아의 신세를 지는 것을 국민이 부끄러움으로 여기지만 그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것을 역사는 말해 주고 있습니다.

-1957 년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소련이 스푸트니크 1호라고 하는 인공위성을 발사했습니다. 그 충격은 대단했다고 하는데, 초등학교 학생인 저도 충격을 엄청나게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미국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뱅가드호를 발사했는데 뱅가드호는 지상 2m에서 폭발했습니다. 이것을 실패하고 미국이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왜 소련은 성공하고 우리는 실패했는가, 그 연구보고서의 맨 마지막 페이지는 이렇게 끝이 나 있습니다.
‘우리나라(미국)가 중학교, 고등학교의 수학 교과과정을 바꿔야 한다.’ 아마 연세 드신 분들은 다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소련이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한 것도 독일 과학자들의 힘이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미국이 뱅가드호를 실패하고 그 다음에 머큐리, 재미니, 여러분들이 아시는 아폴로계획에 의해서 우주사업이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미국의 힘이 아니라 폰 브라운이라고 하는 독일 미사일기술자를 데려다가 개발했다는 것도 여러분이 아실 것입니다.

○ 중국은 어떻게 되냐면 여기는 과학자들이니까 전학삼(錢學森)이라는 이름을 기억하실 텐데요, 전학삼은 상해 교통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을 가서 캘리포니아에 공과대학에서 29살에 박사학위를 받고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교수를, 2차대전 때 미국 국방과학위원회의 미사일팀장을, 그리고 독일의 미사일기지 조사위원회 위원장을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핵심기술자입니다.

그런데 이 전학삼이라는 인물이1950년에 미사일에 관한 기밀문서를 가지고 중국으로 귀국하려다가 이민국에 적발되었습니다. 그래서 간첩혐의로 구금이 되었고 그때 미국에서는 ‘미국에 귀화해라. 미국에 귀화하면 너는 여기서 마음껏 연구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했고 전학삼은 그것을 거절하고 있었습니다. 중국에서는 모택동이 미국 정부에 전학삼을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이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때 중국 정부는 미국인 스파이를 하나 구속하고 있었고, 이 둘을 1 대 1로 교환하자고 그랬어요. 그런데 미국이 그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전학삼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우리는 너와 우리의 스파이를 교환하지만 네가 미국에 귀화한다면 너는 여기 있을 수 있다.’ 그랬더니 전학삼은 가겠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미국에서 전학삼에게 ‘너는 중국에 가더라도 책 한 권, 노트 한 권, 메모지 한 장도 가져갈 수 없다, 맨몸으로만 가라.’
그래도 전학삼은 가겠다고 했습니다.

나이 마흔여섯에 중국에 가서 모택동을 만났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일화입니다.
모택동이 ‘우리도 인공위성을 쏘고 싶다, 할 수 있느냐.’ 그랬더니 전학삼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그것을 해낼 수 있다. 그런데 5년은 기초과학만 가르칠 것이다. 그 다음 5년은 응용과학만 가르친다. 그리고 그 다음 5년은 실제 기계제작에 들어가면 15년 후에 발사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나에게 그동안의 성과가 어떠하냐 등의 말을 절대 15년 이내에는 하지 마라. 그리고 인재들과 돈만 다오. 15년 동안 나에게 어떠한 성과에 관한 질문도 하지 않는다면 15년 후에는 발사할 수 있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모택동이 그것을 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인재와 돈을 대주고 15년 동안은 전학삼에게 아무것도 묻지 말라는 명령을 내려 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 나이 61세, 1970년 4월에 중국이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중국 정부가 이 모든 발사제작의 책임자가 전학삼이라는 것을 공식 확인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오늘날 중국의 우주과학 이러한 것도 전부 전학삼에서 나왔는데 그것도 결국은 미국의 기술입니다. 미국은 독일의 기술이고 소련도 독일의 기술입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러시아의 신세를 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선진국도 다 그랬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 한국역사의 특수성

○ 미국이 우주과학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중·고등학교의 수학 교과과정을 바꾸었다면 우리는 우리를 알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결론은 그것 입니다.

-역사를 보는 방법도 대단히 다양한데요. 우리는 초등학교 때 이렇게 배웠습니다.
‘조선은 500년 만에 망했다.’ 아마 이 가운데서 초등학교 때 공부 잘하신 분들은 이걸 기억하실 것입니다. 500년 만에 조선이 망한 이유 4가지를 달달 외우게 만들었습니다. 기억나십니까?
“사색당쟁, 대원군의 쇄국정책, 성리학의 공리공론, 반상제도 등 4가지 때문에 망했다.” 이렇게 가르칩니다. 그러면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아, 우리는 500년 만에 망한 민족이구나, 그것도 기분 나쁘게 일본에게 망했구나.’ 하는 참담한 심정을 갖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까 나로호의 실패를 중국, 미국, 소련 등 다른 나라에 비추어 보듯이 우리 역사도 다른 나라에 비추어 보아야 됩니다.
조선이 건국된 것이 1392년이고 한일합방이 1910년입니다. 금년이 2010년이니까 한일합방 된 지 딱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러면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세계 역사를 놓고 볼 때 다른 나라 왕조는 600년, 700년, 1,000년 가고 조선만 500년 만에 망했으면 왜 조선은 500년 만에 망했는가 그 망한 이유를 찾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다른 나라에는 500년을 간 왕조가 그 당시에 하나도 없고 조선만 500년 갔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조선은 어떻게 해서 500년이나 갔을까 이것을 따지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1300 년대의 역사 구도를 여러분이 놓고 보시면 전 세계에서 500년 간 왕조는 실제로 하나도 없습니다. 서구에서는 어떻게 됐느냐면, 신성로마제국이 1,200년째 계속되고 있었는데 그것은 제국이지 왕조가 아닙니다. 오스만투르크가 600년째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제국이지 왕조는 아닙니다. 유일하게 500년 간 왕조가 하나 있습니다. 에스파냐왕국입니다. 그 나라가 500년째 가고 있었는데 불행히도 에스파냐왕국은 한 집권체가 500년을 지배한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나폴레옹이 ‘어, 이 녀석들이 말을 안 들어, 이거 안 되겠다. 형님, 에스파냐 가서 왕 좀 하세요.’ 그래서 나폴레옹의 형인 조셉 보나파르트가 에스파냐에 가서 왕을 했습니다. 이렇게 왔다 갔다 한 집권체이지 단일한 집권체가 500년 가지 못했습니다.

전세계에서 단일한 집권체가 518년째 가고 있는 것은 조선 딱 한 나라 이외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잠깐 위로 올라가 볼까요.
고려가 500년 갔습니다. 통일신라가 1,000년 갔습니다. 고구려가 700년 갔습니다. 백제가 700년 갔습니다. 신라가 BC 57년에 건국됐으니까 BC 57년 이후에 세계 왕조를 보면 500년 간 왕조가 딱 두 개 있습니다. 러시아의 이름도 없는 왕조가 하나 있고 동남 아시아에 하나가 있습니다. 그 외에는 500년 간 왕조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통일신라처럼 1,000년 간 왕조도 당연히 하나도 없습니다. 고구려, 백제만큼 700년 간 왕조도 당연히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린 것은 과학입니다.

-그러면 이 나라는 엄청나게 신기한 나라입니다. 한 왕조가 세워지면 500년, 700년, 1,000년을 갔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럴려면 두 가지 조건 중에 하나가 성립해야 합니다.
하나는 우리 선조가 몽땅 바보다, 그래서 권력자들, 힘 있는 자들이 시키면 무조건 굴종했다, 그러면 세계 역사상 유례없이 500년, 700년, 1,000년 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이 바보가 아니었다,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고 다시 말씀드리면 인권에 관한 의식이 있고 심지어는 국가의 주인이라고 하는 의식이 있다면, 또 잘 대드는 성격이 있다면, 최소한도의 정치적인 합리성, 최소한도의 경제적인 합리성, 조세적인 합리성, 법적인 합리성, 문화의 합리성 이러한 것들이 있지 않으면 전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이러한 장기간의 통치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기록의 정신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보면 25년에 한 번씩 민란이 일어납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동학란이나 이런 것은 전국적인 규모이고, 이 민란은 요새 말로 하면 대규모의 데모에 해당합니다. 우리는 상소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이, 기생도 노비도 글만 쓸 수 있으면 ‘왕과 나는 직접 소통해야겠다, 관찰사와 이야기하니까 되지를 않는다.’ 왕한테 편지를 보냅니다. 그런데 이런 상소제도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왜? 편지를 하려면 한문 꽤나 써야 되잖아요. ‘그럼 글 쓰는 사람만 다냐, 글 모르면 어떻게 하느냐’ 그렇게 해서 나중에는 언문상소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래도 불만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래도 글줄 깨나 해야 왕하고 소통하느냐, 나도 하고 싶다’ 이런 불만이 터져 나오니까 신문고를 설치했습니다. ‘그럼 와서 북을 쳐라’ 그러면 형조의 당직관리가 와서 구두로 말을 듣고 구두로 왕에게 보고했습니다. 이래도 또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여러분, 신문고를 왕궁 옆에 매달아 놨거든요. 그러니까 지방 사람들이 뭐라고 했냐면 ‘왜 한양 땅에 사는 사람들만 그걸하게 만들었느냐, 우리는 뭐냐’ 이렇게 된 겁니다. 그래서 격쟁(?錚)이라는 제도가 생겼습니다. 격은 칠격(?)자이고 쟁은 꽹과리 쟁(錚)자입니다. 왕이 지방에 행차를 하면 꽹과리나 징을 쳐라. 혹은 대형 플래카드를 만들어서 흔들어라, 그럼 왕이 ‘무슨 일이냐’ 하고 물어봐서 민원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이것을 격쟁이라고 합니다.

○ 우리는 이러한 제도가 흔히 형식적인 제도겠지 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정조의 행적을 조사해 보면, 정조가 왕 노릇을 한 것이 24년입니다. 24년 동안 상소, 신문고, 격쟁을 해결한 건수가 5,000건 입니다. 이것을 제위 연수를 편의상 25년으로 나누어보면 매년 200건을 해결했다는 얘기이고 공식 근무일수로 따져보면 매일 1건 이상을 했다는 것입니다.

영조 같은 왕은 백성들이 너무나 왕을 직접 만나고 싶어 하니까 아예 날짜를 정하고 장소를 정해서 ‘여기에 모이시오.’ 해서 정기적으로 백성들을 만났습니다. 여러분, 서양의 왕 가운데 이런 왕 보셨습니까? 이것이 무엇을 말하느냐면 이 나라 백성들은 그렇게 안 해주면 통치할 수 없으니까 이러한 제도가 생겼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면 이 나라 국민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그렇게 보면 아까 말씀 드린 두 가지 사항 가운데 후자에 해당합니다. 이 나라 백성들은 만만한 백성이 아니다. 그러면 최소한도의 합리성이 있었을 것이다. 그 합리성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오늘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는 조금 김새시겠지만 기록의 문화입니다.여러분이 이집트에 가 보시면, 저는 못 가봤지만 스핑크스가 있습니다. 그걸 딱 보면 어떠한 생각을 할까요? 중국에 가면 만리장성이 있습니다. 아마도 여기 계신 분들은 거의 다 이런 생각을 하셨을 것입니다. ‘이집트 사람, 중국 사람들은 재수도 좋다, 좋은 선조 만나서 가만히 있어도 세계의 관광달러가 모이는 구나’
여기에 석굴암을 딱 가져다 놓으면 좁쌀보다 작습니다. 우리는 뭐냐. 이런 생각을 하셨지요? 저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보니까 그러한 유적이 우리에게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습니다. 베르사유의 궁전같이 호화찬란한 궁전이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습니다.

여러분, 만약 조선시대에 어떤 왕이 등극을 해서 피라미드 짓는 데 30만 명 동원해서 20년 걸렸다고 가정을 해보죠. 그 왕이 ‘국민 여러분, 조선백성 여러분, 내가 죽으면 피라미드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자제 청·장년 30만 명을 동원해서 한 20년 노역을 시켜야겠으니 조선백성 여러분, 양해하시오.’
그랬으면 무슨 일이 났을 것 같습니까? ‘마마, 마마가 나가시옵소서.’ 이렇게 되지 조선백성들이 20년 동안 그걸 하고 앉아있습니까? 안 하지요.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그러한 문화적 유적이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만일 어떤 왕이 베르사유궁전 같은 것을 지으려고 했으면 무슨 일이 났겠습니까. ‘당신이 나가시오, 우리는 그런 것을 지을 생각이 없소.’ 이것이 정상적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그러한 유적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대신에 무엇을 남겨 주었느냐면 기록을 남겨주었습니다. 여기에 왕이 있다면, 바로 곁에 사관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생각하시면 간단합니다. 여러분께서 아침에 출근을 딱 하시면, 어떠한 젊은이가 하나 달라붙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하시는 말을 다 적고, 여러분이 만나는 사람을 다 적고, 둘이 대화한 것을 다 적고, 왕이 혼자 있으면 혼자 있다, 언제 화장실 갔으면 화장실 갔다는 것도 다 적고, 그것을 오늘 적고, 내일도 적고, 다음 달에도 적고 돌아가신 날 아침까지 적습니다. 기분이 어떠실 것 같습니까?
공식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왕은 그 누구도 독대할 수 없다고 경국대전에 적혀 있습니다. 우리가 사극에서 살살 간신배 만나고 장희빈 살살 만나고 하는 것은 다 거짓말입니다. 왕은 공식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누구도 만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인조 같은 왕은 너무 사관이 사사건건 자기를 쫓아다니는 것이 싫으니까 어떤 날 대신들에게 ‘내일은 저 방으로 와, 저 방에서 회의할 거야.’ 그러고 도망갔습니다. 거기서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사관이 마마를 놓쳤습니다. 어디 계시냐 하다가 지필묵을 싸들고 그 방에 들어갔습니다. 인조가 ‘공식적인 자리가 아닌 데서 회의를 하는데도 사관이 와야 되는가?’ 그러니까 사관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마, 조선의 국법에는 마마가 계신 곳에는 사관이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적었습니다.
너무 그 사관이 괘씸해서 다른 죄목을 걸어서 귀향을 보냈습니다. 그러니까 다음 날 다른 사관이 와서 또 적었습니다. 이렇게 500년을 적었습니다.

사관은 종7품에서 종9품 사이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공무원제도에 비교를 해보면 아무리 높아도 사무관을 넘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왕을 사사건건 따라 다니며 다 적습니다. 이걸 500년을 적는데, 어떻게 했냐면 한문으로 써야 하니까 막 흘려 썼을 것 아닙니까? 그날 저녁에 집에 와서 정서를 했습니다. 이걸 사초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왕이 돌아가시면 한 달 이내, 이것이 중요합니다. 한 달 이내에 요새 말로 하면 왕조실록 편찬위원회를 구성합니다. 사관도 잘못 쓸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영의정, 이러한 말 한 사실이 있소? 이러한 행동한 적이 있소?’ 확인합니다. 그렇게 해서 즉시 출판합니다. 4부를 출판했습니다. 4부를 찍기 위해서 목판활자, 나중에는 금속활자본을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4부를 찍기 위해서 활자본을 만드는 것이 경제적입니까, 사람이 쓰는 것이 경제적입니까? 쓰는 게 경제적이지요. 그런데 왜 활판인쇄를 했느냐면 사람이 쓰면 글자 하나 빼먹을 수 있습니다. 글자 하나 잘못 쓸 수 있습니다. 하나 더 쓸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후손들에게 4부를 남겨주는데 사람이 쓰면 4부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후손들이 어느 것이 정본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목판활자, 금속활자본을 만든 이유는 틀리더라도 똑같이 틀려라, 그래서 활자본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500년 분량을 남겨주었습니다.

유네스코에서 조사를 했습니다. 왕의 옆에서 사관이 적고 그날 저녁에 정서해서 왕이 죽으면 한 달 이내에 출판 준비에 들어가서 만들어낸 역사서를 보니까 전 세계에 조선만이 이러한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6,400만자입니다. 6,400만자 하면 좀 적어 보이지요? 그런데 6,400만자는 1초에 1자씩 하루 4시간을 보면 11.2년 걸리는 분량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는 공식적으로 "조선왕조실록"을 다룬 학자는 있을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러한 생각 안 드세요? ‘사관도 사람인데 공정하게 역사를 기술했을까’ 이런 궁금증이 가끔 드시겠지요? 사관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역사를 쓰도록 어떤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말씀드리죠.
세종이 집권하고 나서 가장 보고 싶은 책이 있었습니다. 뭐냐 하면 태종실록입니다. ‘아버지의 행적을 저 사관이 어떻게 썼을까?’ 너무너무 궁금해서 태종실록을 봐야겠다고 했습니다. 맹사성이라는 신하가 나섰습니다.
‘보지 마시옵소서.’ ‘왜, 그런가.’ ‘마마께서 선대왕의 실록을 보시면 저 사관이 그것이 두려워서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없습니다.’
세종이 참았습니다. 몇 년이 지났습니다. 또 보고 싶어서 환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선대왕의 실록을 봐야겠다.’ 이번에는 핑계를 어떻게 댔느냐면 ‘선대왕의 실록을 봐야 그것을 거울삼아서 내가 정치를 잘할 것이 아니냐’
그랬더니 황 희 정승이 나섰습니다. ‘마마, 보지 마시옵소서.’ ‘왜, 그런가.’
‘마마께서 선대왕의 실록을 보시면 이 다음 왕도 선대왕의 실록을 보려 할 것이고 다음 왕도 선대왕의 실록을 보려할 것입니다. 그러면 저 젊은 사관이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마께서도 보지 마시고 이다음 조선왕도 영원히 실록을 보지 말라는 교지를 내려주시옵소서.’ 그랬습니다.
이걸 세종이 들었겠습니까, 안 들었겠습니까? 들었습니다. ‘네 말이 맞다. 나도 영원히 안 보겠다. 그리고 조선의 왕 누구도 실록을 봐서는 안 된다’는 교지를 내렸습니다. 그래서 조선의 왕 누구도 실록을 못 보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중종은 슬쩍 봤습니다. 봤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안보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여러분, 왕이 못 보는데 정승판서가 봅니까? 정승판서가 못 보는데 관찰사가 봅니까? 관찰사가 못 보는데 변 사또가 봅니까?
이런 사람이 못 보는데 국민이 봅니까? 여러분,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조선시대 그 어려운 시대에 왕의 하루하루의 그 행적을 모든 정치적인 상황을 힘들게 적어서 아무도 못 보는 역사서를 500년을 썼습니다. 누구 보라고 썼겠습니까?

대한민국 국민 보라고 썼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 땅은 영원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핏줄 받은 우리 민족이 이 땅에서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후손들이여, 우리는 이렇게 살았으니 우리가 살았던 문화, 제도, 양식을 잘 참고해서 우리보다 더 아름답고 멋지고 강한 나라를 만들어라, 이러한 역사의식이 없다면 그 어려운 시기에 왕도 못 보고 백성도 못 보고 아무도 못 보는 그 기록을 어떻게 해서 500년이나 남겨주었겠습니까.
"조선왕조실록"은 한국인의 보물일 뿐 아니라 인류의 보물이기에, 유네스코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을 해 놨습니다.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가 있습니다. 승정원은 오늘날 말하자면 청와대비서실입니다. 사실상 최고 권력기구지요. 이 최고 권력기구가 무엇을 하냐면 ‘왕에게 올릴 보고서, 어제 받은 하명서, 또 왕에게 할 말’ 이런 것들에 대해 매일매일 회의를 했습니다. 이 일지를 500년 동안 적어 놓았습니다. 아까 실록은 그날 밤에 정서했다고 했지요. 그런데 ‘승정원일기’는 전월 분을 다음 달에 정리했습니다. 이 ‘승정원일기’를 언제까지 썼느냐면 조선이 망한 해인 1910년까지 썼습니다. 누구 보라고 써놓았겠습니까? 대한민국 국민 보라고 썼습니다. 유네스코가 조사해보니 전 세계에서 조선만이 그러한 기록을 남겨 놓았습니다. 그런데 ‘승정원일기’는 임진왜란 때 절반이 불타고 지금 288년 분량이 남아있습니다. 이게 몇 자냐 하면 2억 5,000만자입니다. 요새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이것을 번역하려고 조사를 해 보니까 잘하면 앞으로 50년 후에 끝나고 못하면 80년 후에 끝납니다. 이러한 방대한 양을 남겨주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선조입니다.

○ ‘일성록(日省錄)’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날 日자, 반성할 省자입니다. 왕들의 일기입니다. 정조가 세자 때 일기를 썼습니다. 그런데 왕이 되고 나서도 썼습니다. 선대왕이 쓰니까 그 다음 왕도 썼습니다. 선대왕이 썼으니까 손자왕도 썼습니다. 언제까지 썼느냐면 나라가 망하는 1910년까지 썼습니다.
아까 ‘조선왕조실록’은 왕들이 못 보게 했다고 말씀 드렸지요. 선대왕들이 이러한 경우에 어떻게 정치했는가를 지금 왕들이 알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정조가 고민해서 기왕에 쓰는 일기를 체계적, 조직적으로 썼습니다. 국방에 관한 사항, 경제에 관한 사항, 과거에 관한 사항, 교육에 관한 사항 이것을 전부 조목조목 나눠서 썼습니다.
여러분, 150년 분량의 제왕의 일기를 가진 나라를 전 세계에 가서 찾아보십시오. 저는 우리가 서양에 가면 흔히들 주눅이 드는데 이제부터는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언젠가는 이루어졌으면 하는 꿈과 소망이 있습니다. 이러한 책들을 전부 한글로 번역합니다. 이 가운데 ‘조선왕조실록’은 개략적이나마 번역이 되어 있고 나머지는 손도 못 대고 있습니다. 이것을 번역하고 나면 그 다음에 영어로 하고 핀란드어로 하고 노르웨이어로 하고 덴마크어로 하고 스와힐리어로 하고 전 세계 언어로 번역합니다. 그래서 컴퓨터에 탑재한 다음날 전 세계 유수한 신문에 전면광고를 냈으면 좋겠습니다.
‘세계인 여러분, 아시아의 코리아에 150년간의 제왕의 일기가 있습니다. 288년간의 최고 권력기구인 비서실의 일기가 있습니다. 실록이 있습니다. 혹시 보시고 싶으십니까? 아래 주소를 클릭하십시오. 당신의 언어로 볼 수 있습니다.’
해서 이것을 본 세계인이 1,000만이 되고, 10억이 되고 20억이 되면 이 사람들은 코리안들을 어떻게 생각할 것 같습니까.
‘야, 이놈들 보통 놈들이 아니구나. 어떻게 이러한 기록을 남기는가, 우리나라는 뭔가.’이러한 의식을 갖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게 뭐냐면 국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국이라고 하는 브랜드가 그만큼 세계에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이러한 것을 남겨주었는데 우리가 지금 못 하고 있을 뿐입니다.

○ 이러한 기록 중에 지진에 대해 제가 조사를 해 보았습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지진이 87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3회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려사(高麗史)’에는 249회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2,029회 나옵니다. 다 합치면 2,368회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 방폐장, 핵발전소 만들 때 이것을 참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통계를 내면 어느 지역에서는 155년마다 한 번씩 지진이 났었을 수 있습니다. 어느 지역은 200년마다 한 번씩 지진이 났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역을 다 피해서 2000년 동안 지진이 한 번도 안 난 지역에 방폐장, 핵발전소 만드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방폐장, 핵발전소 만들면 세계인들이 틀림없이 산업시찰을 올 것입니다. 그러면 수력발전소도 그런 데 만들어야지요. 정문에 구리동판을 세워놓고 영어로 이렇게 썼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민족이 가진 2,000년 동안의 자료에 의하면 이 지역은 2,000년 동안 단 한번도 지진이 발생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곳에 방폐장, 핵발전소, 수력발전소를 만든다. 대한민국 국민 일동.’
이렇게 하면 전 세계인들이 이것을 보고 ‘정말 너희들은 2,000년 동안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느냐?’고 물어볼 것이고, 제가 말씀드린 책을 카피해서 기록관에 하나 갖다 놓으면 됩니다.

이 지진의 기록도 굉장히 구체적입니다. 어떻게 기록이 되어 있느냐 하면 ‘우물가의 버드나무 잎이 흔들렸다’ 이것이 제일 약진입니다. ‘흙담에 금이 갔다, 흙담이 무너졌다, 돌담에 금이 갔다, 돌담이 무너졌다, 기왓장이 떨어졌다, 기와집이 무너졌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현재 지진공학회에서는 이것을 가지고 리히터 규모로 계산을 해 내고 있습니다. 대략 강진만 뽑아보니까 통일신라 이전까지 11회 강진이 있었고 고려시대에는 11회 강진이, 조선시대에는 26회의 강진이 있었습니다. 합치면 우리는 2,000년 동안 48회의 강진이 이 땅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계산할 수 있는 자료를 신기하게도 선조들은 우리에게 남겨주었습니다.

◈ 정치, 경제적 문제

○ 그 다음에 조세에 관한 사항을 보시겠습니다.

세종이 집권을 하니 농민들이 토지세 제도에 불만이 많다는 상소가 계속 올라옵니다. 세종이 말을 합니다.
‘왜 이런 일이 나는가?’ 신하들이 ‘사실은 고려 말에 이 토지세 제도가 문란했는데 아직까지 개정이 안 되었습니다.’
세종의 리더십은 ‘즉시 명령하여 옳은 일이라면 현장에서 해결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개정안이 완성되었습니다. 세종12년 3월에 세종이 조정회의에 걸었지만 조정회의에서 부결되었습니다. 왜 부결 되었냐면 ‘마마, 수정안이 원래의 현행안보다 농민들에게 유리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농민들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우리는 모릅니다.’ 이렇게 됐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 하다가 기발한 의견이 나왔어요.
‘직접 물어봅시다.’ 그래서 물어보는 방법을 찾는 데 5개월이 걸렸습니다. 세종12년 8월에 국민투표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찬성 9만 8,657표, 반대 7만 4,149표 이렇게 나옵니다. 찬성이 훨씬 많지요. 세종이 조정회의에 다시 걸었지만 또 부결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대신들의 견해는 ‘마마, 찬성이 9만 8,000, 반대가 7만 4,000이니까 찬성이 물론 많습니다. 그러나 7만 4,149표라고 하는 반대도 대단히 많은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상소를 내기 시작하면 상황은 전과 동일합니다.’ 이렇게 됐어요.

세종이 ‘그러면 농민에게 더 유리하도록 안을 만들어라.’해서 안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실시하자 그랬는데 또 부결이 됐어요. 그 이유는 ‘백성들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모릅니다.’였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하니 ‘조그마한 지역에 시범실시를 합시다.’ 이렇게 됐어요.
시범실시를 3년 했습니다. 결과가 성공적이라고 올라왔습니다. ‘전국에 일제히 실시하자’고 다시 조정회의에 걸었습니다. 조정회의에서 또 부결이 됐어요. ‘마마, 농지세라고 하는 것은 토질이 좋으면 생산량이 많으니까 불만이 없지만 토질이 박하면 생산량이 적으니까 불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과 토질이 전혀 다른 지역에도 시범실시를 해 봐야 됩니다.’ 세종이 그러라고 했어요. 다시 시범실시를 했어요. 성공적이라고 올라왔어요.
세종이 ‘전국에 일제히 실시하자’고 다시 조정회의에 걸었습니다. 또 부결이 됐습니다. 이유는 ‘마마, 작은 지역에서 이 안을 실시할 때 모든 문제점을 우리는 토론했습니다. 그러나 전국에서 일제히 실시할 때 무슨 문제가 나는지를 우리는 토론한 적이 없습니다.’ 세종이 토론하라 해서 세종25년 11월에 이 안이 드디어 공포됩니다.
조선시대에 정치를 이렇게 했습니다. 세종이 백성을 위해서 만든 개정안을 정말 백성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를 국민투표를 해 보고 시범실시를 하고 토론을 하고 이렇게 해서 13년만에 공포·시행했습니다.

대한민국정부가 1945년 건립되고 나서 어떤 안을 13년 동안 이렇게 연구해서 공포·실시했습니까. 저는 이러한 정신이 있기 때문에 조선이 500년이나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법률 문제

○ 법에 관한 문제를 보시겠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3심제를 하지 않습니까? 조선시대에는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조선시대에 3심제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형수에 한해서는 3심제를 실시했습니다. 원래는 조선이 아니라 고려 말 고려 문종 때부터 실시했는데, 이를 삼복제(三覆制)라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사형수 재판을 맨 처음에는 변 사또 같은 시골 감형에서 하고, 두 번째 재판은 고등법원, 관찰사로 갑니다. 옛날에 지방관 관찰사는 사법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재판은 서울 형조에 와서 받았습니다. 재판장은 거의 모두 왕이 직접 했습니다. 왕이 신문을 했을 때 그냥 신문한 것이 아니라 신문한 것을 옆에서 받아썼어요. 조선의 기록정신이 그렇습니다. 기록을 남겨서 그것을 책으로 묶었습니다.
그 책 이름이 ‘심리록(審理錄)’이라는 책입니다. 정조가 1700년대에 이 '심리록'을 출판했습니다. 오늘날 번역이 되어 큰 도서관에 가시면 ‘심리록’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왕이 사형수를 직접 신문한 내용이 거기에 다 나와 있습니다.
왕들은 뭐를 신문했냐 하면 이 사람이 사형수라고 하는 증거가 과학적인가 아닌가 입니다. 또 한 가지는 고문에 의해서 거짓 자백한 것이 아닐까를 밝히기 위해서 왕들이 무수히 노력합니다. 이 증거가 맞느냐 과학적이냐 합리적이냐 이것을 계속 따집니다. 이래서 상당수의 사형수는 감형되거나 무죄 석방되었습니다.
이런 것이 조선의 법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조선이 500년이나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 과학적 사실

○ 다음에는 과학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돈다고 지동설을 주장한 것이 1543년입니다. 그런데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에는 이미 다 아시겠지만 물리학적 증명이 없었습니다. 물리학적으로 지구가 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은 1632년에 갈릴레오가 시도했습니다. 종교법정이 그를 풀어주면서도 갈릴레오의 책을 보면 누구나 지동설을 믿을 수밖에 없으니까 책은 출판금지를 시켰습니다. 그 책이 인류사에 나온 것은 그로부터 100년 후입니다. 1767년에 인류사에 나왔습니다.

-동양에서는 어떠냐 하면 지구는 사각형으로 생겼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늘은 둥글고 지구는 사각형이다, 이를 천원지방설(天圓地方說)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실은 동양에서도 지구는 둥글 것이라고 얘기한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여러분들이 아시는 성리학자 주자입니다, 주희. 주자의 책을 보면 지구는 둥글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황진이의 애인, 고려시대 학자 서화담의 책을 봐도 ‘지구는 둥글 것이다, 지구는 둥글어야 한다, 바닷가에 가서 해양을 봐라 지구는 둥글 것이다’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떠한 형식이든 증명한 것이 1400년대 이순지(李純之)라고 하는 세종시대의 학자입니다. 이순지는 지구는 둥글다고 선배 학자들에게 주장했습니다. 그는 ‘일식의 원리처럼 태양과 달 사이에 둥근 지구가 들어가고 그래서 지구의 그림자가 달에 생기는 것이 월식이다, 그러니까 지구는 둥글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1400년대입니다. 그러니까 선배 과학자들이 ‘그렇다면 우리가 일식의 날짜를 예측할 수 있듯이 월식도 네가 예측할 수 있어야 할 것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이순지는 모년 모월 모시 월식이 생길 것이라고 했고 그날 월식이 생겼습니다. 이순지는 ‘교식추보법(交食推步法)’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일식, 월식을 미리 계산해 내는 방법이라는 책입니다. 그 책은 오늘날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과학적인 업적을 쌓아가니까 세종이 과학정책의 책임자로 임명했습니다. 이때 이순지의 나이 약관 29살입니다. 그리고 첫 번째 준 임무가 조선의 실정에 맞는 달력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동지상사라고 많이 들어보셨지요? 동짓달이 되면 바리바리 좋은 물품을 짊어지고 중국 연변에 가서 황제를 배알하고 뭘 얻어 옵니다. 다음 해의 달력을 얻으러 간 것입니다. 달력을 매년 중국에서 얻어 와서는 자주독립국이 못될뿐더러, 또 하나는 중국의 달력을 갖다 써도 해와 달이 뜨는 시간이 다르므로 사리/조금의 때가 정확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조선 땅에 맞는 달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됐습니다. 수학자와 천문학자가 총 집결을 했습니다. 이순지가 이것을 만드는데 세종한테 그랬어요.
‘못 만듭니다.’
‘왜?’
‘달력을 서운관(書雲觀)이라는 오늘날의 국립기상천문대에서 만드는데 여기에 인재들이 오지 않습니다.’
‘왜 안 오는가?’
‘여기는 진급이 느립니다.’ 그랬어요.
오늘날 이사관쯤 되어 가지고 국립천문대에 발령받으면 물 먹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행정안전부나 청와대비서실 이런 데 가야 빛 봤다고 하지요? 옛날에도 똑같았어요. 그러니까 세종이 즉시 명령합니다.
‘서운관의 진급속도를 제일 빠르게 하라.’
‘그래도 안 옵니다.’
‘왜?’
‘서운관은 봉록이 적습니다.’
‘봉록을 올려라.’ 그랬어요.
‘그래도 인재들이 안 옵니다.’
‘왜?’
‘서운관 관장이 너무나 약합니다.’
‘그러면 서운관 관장을 어떻게 할까?’
‘강한 사람을 보내주시옵소서. 왕의 측근을 보내주시옵소서.’
세종이 물었어요. ‘누구를 보내줄까?’
누구를 보내달라고 했는 줄 아십니까?
‘정인지를 보내주시옵소서.’ 그랬어요. 정인지가 누구입니까? 고려사를 쓰고 한글을 만들고 세종의 측근 중의 측근이고 영의정입니다.

세종이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영의정 정인지를 서운관 관장으로 겸임 발령을 냈습니다. 그래서 1,444년에 드디어 이 땅에 맞는 달력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순지는 당시 가장 정확한 달력이라고 알려진 아라비아의 회회력의 체제를 몽땅 분석해 냈습니다. 일본학자가 쓴 세계천문학사에는 회회력을 가장 과학적으로 정교하게 분석한 책이 조선의 이순지著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달력이 하루 10분, 20분, 1시간 틀려도 모릅니다. 한 100년, 200년 가야 알 수 있습니다. 이 달력이 정확한지 안 정확한지를 어떻게 아냐면 이 달력으로 일식을 예측해서 정확히 맞으면 이 달력이 정확한 것입니다. 이순지는 '칠정산외편'이라는 달력을 만들어 놓고 공개를 했습니다. 1,447년 세종 29년 음력 8월 1일 오후 4시 50분 27초에 일식이 시작될 것이고 그날 오후 6시 55분 53초에 끝난다고 예측했습니다. 이게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세종이 너무나 반가워서 그 달력의 이름을 ‘칠정력’이라고 붙여줬습니다. 이것이 그 후에 200년간 계속 사용되었습니다.

여러분 1,400년대 그 당시에 자기 지역에 맞는 달력을 계산할 수 있고 일식을 예측할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 세 나라밖에 없었다고 과학사가들은 말합니다. 하나는 아라비아, 하나는 중국, 하나는 조선입니다.
그런데 이순지가 이렇게 정교한 달력을 만들 때 달력을 만든 핵심기술이 어디 있냐면 지구가 태양을 도는 시간을 얼마나 정교하게 계산해 내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칠정산외편’에 보면 이순지는 지구가 태양을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365일 5시간 48분 45초라고 계산해 놓았습니다. 오늘날 물리학적인 계산은 365일 5시간 48분 46초입니다. 1초 차이가 나게 1400년대에 계산을 해냈습니다. 여러분, 그 정도면 괜찮지 않습니까?

-홍대용이라는 사람은 수학을 해서 ‘담헌서(湛軒書)’라는 책을 썼습니다. ‘담헌서’는 한글로 번역되어 큰 도서관에는 다 있습니다. 이 ‘담헌서’ 가운데 제5권이 수학책입니다. 홍대용이 조선시대에 발간한 수학책의 문제가 어떤지 설명 드리겠습니다. ‘구체의 체적이 6만 2,208척이다. 이 구체의 지름을 구하라.’ cos, sin, tan가 들어가야 할 문제들이 쫙 깔렸습니다. 조선시대의 수학책인 ‘주해수용(籌解需用)’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sinA를 한자로 正弦, cosA를 餘弦, tanA를 正切, cotA를 餘切, secA를 正割, cosecA를 如割, 1-cosA를 正矢, 1-sinA를 餘矢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것이 있으려면 삼각함수표가 있어야 되잖아요. 이 ‘주해수용’의 맨 뒤에 보면 삼각함수표가 그대로 나와 있습니다. 제가 한 번 옮겨봤습니다.
예를 들면 正弦 25도 42분 51초, 다시 말씀 드리면 sin25.4251도의 값은 0.4338883739118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제가 이것을 왜 다 썼느냐 하면 소수점 아래 몇 자리까지 있나 보려고 제가 타자로 다 쳐봤습니다. 소수점 아래 열세 자리까지 있습니다. 이만하면 조선시대 수학책 괜찮지 않습니까?

다른 문제 또 하나 보실까요? 甲地와 乙地는 동일한 子午眞線에 있다. 조선시대 수학책 문제입니다. 이때는 子午線이라고 안 하고 子午眞線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이미 이 시대가 되면 지구는 둥글다고 하는 것이 보편적인 지식이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甲地와 乙地는 동일한 子午線上에 있다. 甲地는 北極出地, 北極出地는 緯度라는 뜻입니다. 甲地는 緯度 37도에 있고 乙地는 緯度 36도 30분에 있다. 甲地에서 乙地로 직선으로 가는데 고뢰(鼓?)가 12번 울리고 종료(鍾鬧)가 125번 울렸다. 이때 지구 1도의 里數와 지구의 지름, 지구의 둘레를 구하라. 이러한 문제입니다.

이 고뢰(鼓? ) , 종료(鍾鬧)는 뭐냐 하면 여러분 김정호가 그린 대동여지도를 초등학교 때 사회책에서 보면 오늘날의 지도와 상당히 유사하지 않습니까? 옛날 조선시대의 지도가 이렇게 오늘날 지도와 비슷했을까? 이유는 축척이 정확해서 그렇습니다. 대동여지도는 십리 축척입니다. 십리가 한 눈금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왜 정확하냐면 기리고거(記里鼓車)라고 하는 수레를 끌고 다녔습니다.
기리고거가 뭐냐 하면 기록할 記자, 리는 백리 2백리 하는 里자, 里數를 기록하는, 고는 북 鼓자, 북을 매단 수레 車, 수레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만들었냐 하면 수레가 하나 있는데 중국의 동진시대에 나온 수레입니다. 바퀴를 정확하게 원둘레가 17척이 되도록 했습니다. 17척이 요새의 계산으로 하면 대략 5미터입니다. 이것이 100바퀴를 굴러가면 그 위에 북을 매달아놨는데 북을 ‘뚱’하고 치게 되어 있어요. 북을 열 번 치면 그 위에 종을 매달아놨는데 종을 ‘땡’하고 치게 되어 있어요. 여기 고뢰, 종료라고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5km가 되어서 딱 10리가 되면 종이 ‘땡’하고 칩니다. 김정호가 이것을 끌고 다녔습니다.

우리 세종이 대단한 왕입니다. 몸에 피부병이 많아서 온양온천을 자주 다녔어요. 그런데 온천에 다닐 때도 그냥 가지 않았습니다. 이 기리고거를 끌고 갔어요. 그래서 한양과 온양 간이라도 길이를 정확히 계산해 보자 이런 것을 했었어요. 이것을 가지면 지구의 지름, 지구의 둘레를 구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원주를 파이로 나누면 지름이다 하는 것이 이미 보편적인 지식이 되어 있었습니다.

◈ 수학적 사실

○ 그러면 우리 수학의 씨는 어디에 있었을까 하는 것인데요,

여러분 불국사 가보시면 건물 멋있잖아요. 석굴암도 멋있잖아요. 불국사를 지으려면 건축학은 없어도 건축술은 있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최소한 건축술이 있으려면 물리학은 없어도 물리술은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물리술이 있으려면 수학은 없어도 산수는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이게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가졌던 의문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지었을까.
그런데 저는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 선생님을 너무 너무 존경합니다. 여러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어디인 줄 아십니까? 에스파냐, 스페인에 있습니다. 1490년대에 국립대학이 세워졌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옥스퍼드와 캠브리지는 1600년대에 세워진 대학입니다. 우리는 언제 국립대학이 세워졌느냐, ‘삼국사기’를 보면 682년, 신문왕 때 국학이라는 것을 세웁니다. 그것을 세워놓고 하나는 철학과를 만듭니다. 관리를 길러야 되니까 논어, 맹자를 가르쳐야지요. 그런데 학과가 또 하나 있습니다. 김부식 선생님은 어떻게 써놓았냐면 ‘산학박사와 조교를 두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명산과입니다. 밝을 明자, 계산할 算자, 科. 계산을 밝히는 과, 요새 말로 하면 수학과입니다. 수학과를 세웠습니다. ‘15세에서 30세 사이의 청년 공무원 가운데 수학에 재능이 있는 자를 뽑아서 9년 동안 수학교육을 실시하였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를 졸업하게 되면 산관(算官)이 됩니다. 수학을 잘 하면 우리나라는 공무원이 됐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서 찾아보십시오. 수학만 잘 하면 공무원이 되는 나라 찾아보십시오. 이것을 산관이라고 합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이 망할 때까지 산관은 계속 되었습니다. 이 산관이 수학의 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하게 됩니다. 산관들은 무엇을 했느냐, 세금 매길 때, 성 쌓을 때, 농지 다시 개량할 때 전부 산관들이 가서 했습니다. 세금을 매긴 것이 산관들입니다.
그런데 그때의 수학 상황을 알려면 무슨 교과서로 가르쳤느냐가 제일 중요하겠지요? 정말 제가 존경하는 김부식 선생님은 여기다가 그 당시 책 이름을 쫙 써놨어요. 삼개(三開), 철경(綴經), 구장산술(九章算術), 육장산술(六章算術)을 가르쳤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구장산술이라는 수학책이 유일합니다. 구장산술은 언제인가는 모르지만 중국에서 나왔습니다. 최소한도 진나라 때 나왔을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나라 문왕이 썼다고 하는데 중국에서는 좋은 책이면 무조건 다 주나라 문왕이 썼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제 8장의 이름이 방정입니다. 방정이 영어로는 equation입니다. 방정이라는 말을 보고 제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았습니다. 저는 사실은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부터 방정식을 푸는데, 방정이라는 말이 뭘까가 가장 궁금했습니다. 어떤 선생님도 그것을 소개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보니까 우리 선조들이 삼국시대에 이미 방정이라는 말을 쓴 것을 저는 외국수학인 줄 알고 배운 것입니다.

○ 9 장을 보면 9장의 이름은 구고(勾股)입니다. 갈고리 勾자, 허벅다리 股자입니다. 맨 마지막 chapter입니다. 방정식에서 2차 방정식이 나옵니다. 그리고 미지수는 다섯 개까지 나옵니다. 그러니까 5원 방정식이 나와 있습니다. 중국 학생들은 피타고라스의 정리라는 말을 모릅니다. 여기에 구고(勾股)정리라고 그래도 나옵니다. 자기네 선조들이 구고(勾股)정리라고 했으니까.
여러분 이러한 삼각함수 문제가 여기에 24문제가 나옵니다. 24문제는 제가 고등학교 때 상당히 힘들게 풀었던 문제들이 여기에 그대로 나옵니다. 이러한 것을 우리가 삼국시대에 이미 교육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것들이 전부 서양수학인 줄 알고 배우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밀률(密率)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비밀할 때 密, 비율 할 때 率. 밀률의 값은 3으로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고려시대의 수학교과서를 보면 밀률의 값은 3.14로 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아까 이순지의 칠정산외편, 달력을 계산해 낸 그 책에 보면 ‘밀률의 값은 3.14159로 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다 그거 삼국시대에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우리는 오늘날 플러스, 마이너스, 정사각형 넓이, 원의 넓이, 방정식, 삼각함수 등을 외국수학으로 이렇게 가르치고 있느냐는 겁니다.

저는 이런 소망을 강력히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초등학교나 중·고등 학교 책에 플러스, 마이너스를 가르치는 chapter가 나오면 우리 선조들은 늦어도 682년 삼국시대에는 플러스를 바를 正자 정이라 했고 마이너스를 부채, 부담하는 부(負)라고 불렀다. 그러나 편의상 正負라고 하는 한자 대신 세계수학의 공통부호인 +-를 써서 표기하자, 또 π를 가르치는 chapter가 나오면 682년 그 당시 적어도 삼국시대에는 우리는 π를 밀률이라고 불렀다, 밀률은 영원히 비밀스런 비율이라는 뜻이다, 오늘 컴퓨터를 π를 계산해 보면 소수점 아래 1조자리까지 계산해도 무한소수입니다. 그러니까 무한소수라고 하는 영원히 비밀스런 비율이라는 이 말은 철저하게 맞는 말이다, 그러나 밀률이라는 한자 대신 π라고 하는 세계수학의 공통 부호를 써서 풀기로 하자 하면 수학시간에도 민족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없는 것을 가지고 대한민국이 세계 제일이다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선조들이 명백하게 다큐멘트, 문건으로 남겨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선조들이 그것을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서양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거짓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것이 전부 정리되면 세계사에 한국의 역사가 많이 올라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잘났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인 세계사를 풍성하게 한다는, 세계사에 대한 기여입니다.

◈ 맺는 말

○ 결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모든 자료는 한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선조들이 남겨준 그러한 책이 ‘조선왕조실록’ 6,400만자짜리 1권으로 치고 2억 5,000만자짜리 ‘승정원일기’ 한 권으로 칠 때 선조들이 남겨준 문질이 우리나라에 문건이 몇 권 있냐면 33만권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주위에 한문 전공한 사람 보셨습니까?
정말 엔지니어가 중요하고 나로호가 올라가야 됩니다. 그러나 우리 국학을 연구하려면 평생 한문만 공부하는 일단의 학자들이 필요합니다. 이들이 이러한 자료를 번역해 내면 국사학자들은 국사를 연구할 것이고, 복제사를 연구한 사람들은 한국복제사를 연구할 것이고, 경제를 연구한 사람들은 한국경제사를 연구할 것이고, 수학교수들은 한국수학사를 연구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스템이 우리나라에는 전혀 되어 있지 않습니다. 한문을 공부하면 굶어죽기 딱 좋기 때문에 아무도 한문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결국 우리의 문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언젠가는 동경대학으로 가고 북경대학으로 가는 상황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한문을 해야 되냐 하면 공대 나온 사람이 한문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한국물리학사, 건축학사가 나옵니다. 수학과 나온 사람이 한문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 허벅다리, 갈고리를 아! 딱 보니까 이거는 삼각함수구나 이렇게 압니다. 밤낮 논어·맹자만 한 사람들이 한문을 해서는 ‘한국의 과학과 문명’이라는 책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사회에 나가시면 ‘이 시대에도 평생 한문만 하는 학자를 우리나라가 양성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여론을 만들어주십시오. 이 마지막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 이런 데서 강연 요청이 오면 저는 신나게 와서 떠들어 댑니다.

감사합니다.






Saturday, October 30, 2010

영화 The Mist (2007) - 스포 있음

3년 전 영화지만 어젯밤 어떤 사전 정보도 없이 감상함.


초반엔 그냥 B급 미스테리 괴수 영화인가보다 했는데
중반부턴 극한 상황에서의 군중의 심리 또는 나약함을 보여주고
후반과 결말에선 주인공들(들이라고 말하고 싶다)의 반전

쇼생크 탈출 감독이란 것과 스티븐 킹 원작이란 것 만으로도 관심을 끌었을법 한데
흥행은 그다지 못한 영화였고 나 역시 보기 전엔 어떤 정보도 흘려듣지 못한
한마디로 듣보잡 영화였다.

그렇게 그냥 오락 영화로 끝날 수 있었던 것이 결말 하나로 꽤 기억에 남길 수 있는 영화가 된 것이다. 뭐 원작자인 스티븐 킹도 찬사를 보냈다고 하니 영화적 연출의도 만큼은 반전 영화의 유행과 난무를 선도했던 식스센스 이래 최고이지 않을까 한다.

어떤 상황에서 이랬다면 저랬다면 하는 가정은 스포츠의 가장 큰 재미이지만 영화에서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바로 이 미스트가 그랬고 이런 논란을 불어일으킨 것 자체로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 나서 여러가지 감상평들을 찾아보니 공통된 몇가지를 찾을 수 있었다.
첫째로 결말이 병맛이라는 의견과 엄청난 반전이었다는 의견이 나뉘었고,
두번째는 영화 보다가 중간에 박수를 치고 환호한 몇 안되는 영화였다는 의견이었다.

난 그 중에 두번째 의견에 대해 몇마디 적어본다.


이 아줌마. 어쩌다보니 최고의 악역에도 순위에 오른 걸 봤다.
두번째 사람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일으켰던 장본인이다. 왜 그랬을까?

영화 초반엔 미스테리한 재앙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이라 여기고 혼자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준 기독교 신자였다. 그러나 사태가 악화되자 점차 전면으로 나서며 사람들을 선동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마녀사냥을 시작하는 사이비 교주가 되어버린다.
그러던 중 주인공 일행중 한명에게 헤드샷 한방에 안드로메다로 가버린 그 장면이 사람들을 환호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캐릭터의 작은 반전을 보여준 이웃집 좋은 아저씨 같았던 이아저씨가 환호를 일으킨 주인공이다.


각설하고,

먼저 밝히지만 나도 기독교인이다. 하지만 저 아줌마를 보면서 느낀 내 감정은 아.. 저런 면들이 기독교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이란 것이었고, 요즘(뭐 2007년에도 별반 다를게 없었을) 기독교에 반감이나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대리 만족을 시켜주었단 느낌이었다.

일부 기독교인들의(정말 일부라고 말하고 싶은데...) 망발과 경거망동(뭐 이것도 쉽게 판단할 것은 아니지만)으로 참으로 기독교에 대해 말이 많고 탈도 많은 시점에 한번 더 생각하게 만든 영화의 한 면이었던 것 같다. 내가 뭐 영화 속에서 이 아줌씨의 (아니, 감독의 의도라고 해야하나) 입장에 대해서는 성경적으로 이렇다 저렇다 판단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기 때문에 그저 안타까운 마음만을 대신한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건 나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아줌마도 그런 상황에서 남 탓하지 말고 자길 돌아보고 회개했다면 어땠을까???

제 점수는요... ★★★☆☆

Thursday, October 28, 2010

He is not invited to the wedding, he is in the wedding.

우리 랩에서 같이 일하는 친구들은 모두 24-26살 정도의, 사실 나이로 치면 내 막내동생보다도 훨씬 더 어리다. 그래도 나는 이런 환경에 잘 적응해서 이 친구들이랑 스트레스도 토로하고 서로 도우면서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어쨌든 나이가 나이다 보니 모두 결혼 적령기이다. 한 명은 이미 결혼했고, 한 명은 올 여름에 결혼하고 다른 학교로 옮겼고, 두 명은 내년에 결혼한다.

그래서 이 녀석들이 모이면 결혼 준비 이야기로 여념이 없다.

재미있는 결혼식 비디오도 찾아보고..


유튜브에서 fun wedding 검색하면 1번으로 올라오는 이 동영상도 덕분에 보고.. ㅋㅋ

미국식 결혼이 모두 이렇게 개성이 빛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자유로운 사람들이 많은 것 같긴 하다. 한 친구도 내년에 Zoo 즉 동물원에서 결혼한다. ㅋㅋ

오늘 그 친구랑 이야기하다가 들은 이야기.
"He is not invited to the wedding, he is in the wedding."
이 이야기는 groomsman인 한 친구에 관한 이야기였다. 즉, 그는 결혼식에 초대되서 구경하는 사람이 아니라 결혼식에서 역할이 있는 사람이라는 뜻 정도?

역시 전치사와 초등학교, 중학교 수준의 영어로만 구성된 이 이야기.. 문맥을 모르면 정확히 알기는 힘들지만 technically 이것은 '쉬운 영어' ㅋㅋ

P.S. 동영상 다 보고 나오는 관련동영상 리스트에서 Jim and Pam wedding (forever)도 좋아한다.

Wednesday, October 27, 2010

티켓

공연 티켓을 말하는게 아니다.
교통 위반 딱지를 티켓이라고 부른다.
미국 와서 3년을 살면서 한번의 벌금 티켓과 두번의 경고 티켓을 받았다.
물론 경고 티켓은 벌금은 없다.

오늘 아침에 두번째 경고 티켓을 받은 김에 운전하면서 느낀걸 적어본다.
세번 정도면 준수한건지 모르겠지만 어쨋든 위반 상황과 분위기가 한국과는 상당히 다르단 걸 알 수 있다.
내가 사는 곳은 대학교를 중심으로 한 작은 소도시인데 경찰들 참 편하게 일한단 느낌이다.
범죄는 거의 없으며 교통위반 티켓 발급이 주 업무라고 생각될 정도로 조용한 곳이다.

첫 티켓의 경험은 온지 5개월만에 겪었다.
"No turn on Red"


교차로에서 적신호 일때 우회전 금지란 뜻이다.
한국에선 볼 수 없는 신호인데 교통량이 많은 교차로에서 보통 볼 수 있다.

바로 여기서 난 용감하게 우회전을 해버렸고 한 500여미터를 경찰차가 쫒아오는지도 모르고 목적지 주차장까지 갔다.
차에서 내리는데 뒤에 경찰이 차에서 내리면서 자기가 계속 쫓아온거 몰랐냐고 물었고...
난 150달러 티켓과 벌점 6 point를 받았고 항의 하려면 Court로 나오란 말도 들었다.
그때부터 이것 저것 구글링을 하며 피할 방도를 찾았지만 소용 무.
물론 그냥 인정하고 150달러 내면 끝인 일이었지만 궁금증에 Court로 출석한 나는 판사 앞에서 고분고분 내 죄를 인정하였다.
후에 검사가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불러모아 자, 벌점 없애려면 1점당 20달러야 라며
일방적인 Negotiation을 제안했다.
벌점을 인정하게 되면 다음 보험료가 올라갈께 뻔했고 처음이라 700달러 이상을 6개월치로 냈던 난 더이상의 보험료 인상은 허락할 수 없었기에 네고를 받아들였다.

두번째 티켓은 경고였다.
아내와 아이를 태우고 30마일 구간에서 39마일로 달렸단 이유였다.
일반적으로 속도제한의 +10% 까지는 봐준다고 하는데 난 몇프로 오버야 ㅜㅜ


경찰은 뒤에서 경광등을 희번떡 거리며 (미국 경찰차는 유독 눈이 부시다) 짧고 굵은 싸이렌 소리로 날 세웠다. 난 내가 속도를 낸걸 알았기에 체념한 상태에서 갓길에 차를 대고 창을 내리고 면허증과 등록증을 준비하고 있었다. ㅜㅜ
창 안으로 나와 가족들을 둘러보더니 면허증과 등록증을 가지고 경찰차로 돌아간 경찰은 한참 후에 (일처리 무지하게 느리다) 다시 오더니 이번엔 경고만 할테니 다음부터 조심하라고 하였다.
휴우~~~~ 난 또 150달러 날리는 줄 알았으나 아마도 경찰이 이번엔 아내와 딸래미 앞에서 불쌍해서 봐준걸로 여겼다.

세번째 오늘 아침..
아내를 수업시간에 맞춰 학교로 가는 길 첫번째 교차로에서 적신호였지만 그놈의 "No turn on Red"가 없는 교차로였기에 늘 하던대로 좌측을 살펴 오는 차가 없나 살핀 후 바로 우회전을 하였다.
그리고 나서 30여미터 전진하는데 뒤에서 역시나 희번뜩 + 애애액!
전혀 감을 못잡고 난 왜그러나 싶어 당당하게 갓길에 차를 세웠다.
경찰이 다가와 하는말 적신호일땐 우회전시 반드시 정차 후 진행을 했어야한다고 한다.
아흐... 그런게 또 있었단 말이냐...
아내의 수업시간은 다가오고 지나가는 차들이 쳐다보는 게 얼굴 팔리는지라
면허증과 등록증을 가지고간 경찰이 오는 시간이 영겁처럼 느껴졌다 ㅜㅜ

난 기도했다 제발 경고, 경고, 경고로 끝내주길...
다시 다가 온 경찰 왈 "이번엔 경고야, 다음부터 그러지 마!" 였다. 후레이~~~ ^^

아무튼 내가 생각해도 좀 운전을 과감하게 하는 경우가 많고 그럴 때마다 아내는 심장을 쓸어내린다. 지금은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차들도 타보고 내가 그래도 나은 편이라고 위로해주긴 하지만 앞으론 더 조심해서 운전하는 습관이 필요할 것 같다.

운전 시 아내의 잔소리(?)는 네비게이션보다 우선입니다.

마지막으로 미국 교통 시스템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적어보면,
우선 미국은 Negative System이란 걸 알아야 한다.
이게 네거티브라서 안 좋은게 아니라 여러가지 지켜야할 교통신호들이 있는데 그 신호들은 반드시 지켜야 하며 그 외의 것은 모두 해도 좋다는 뜻이다.
한국의 경우 Positive System으로 이해가 될 수 있는데, 표지판이 시키는 것 이외의 것은 하지 말아야 하는 시스템인 것이다.

예를 들면 U턴의 경우를 통해 알 수 있다.

한국의 도로에는 이 두가지 신호를 다 볼 수 있고 이걸 지켜야만 한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우측의 유턴 금지 표시만 있을 뿐 이 표지가 없는 곳은 어디서건 유턴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벗뜨, 중요한 것은 실선 도로에서는 절대 유턴을 하면 안된단 거!!
당연한 건가? ^^;;

안전운전 합시다.

Sunday, October 24, 2010

Twitpic - Share photos on Twitter

Twitpic - Share photos on Twitter

이런 일이 일어날까만은..
지금 선데이나잇 풋볼에서 바이킹스의 파브가 패커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는데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거군요 ^^

Can vs. Can't 구별은 어려워..

누가 영어는 중학교때 배웠던 것만 다 해도 잘 하는 거라고 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미국 와서 가끔 그걸 절감할 때가 있다.

수업에 나오는 온갖 복잡한 자르곤 (jargon)들은 그야말로 공부하고 외우면 끝이지만,
얼마 되지도 않는 것들이 끝도 없이 나오는 get, do, take, this, that, she, he, it...
대화에서 이런 말들이 쏟아지기 시작하면 갑자기 이 she는 누구를 말하는 거였지, 저 it는 뭘 가리키는 거더라, get...뭘 겟한단 말이냣! 로 끝나기 쉽상.

가끔은 늘지 않는 영어 실력에 유학을 너무 늦게 왔구나 한탄을 해보기도 하지만,
그럼 뭐하냐구요. 이미 와 버린 것을. 된장..

어렵다고 말하자니 당황스러운 또 다른 한 가지는 can vs. can't.

수업 시간에 교수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다가 갑자기 이 놈 중 하나가 들리면,
'앗, can이라고 했나 can't 라고 했나' 이렇게 한 순간만 생각을 되돌려도 중요한 부분 놓치기 쉽상이다.

나는 학교에서 별도로 Accent reduction이라는 프로그램을 신청해서 일주일에 한 번 clinician과 함께 나의 영어를 손 보고 있는데, 도저히 안 되겠어서 이것 좀 훈련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훈련하는 것과 별도로 이 유투브 링크를 소개시켜 주었다.

유용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이렇게 간단하지도 않다.

내 clinician은 can도 단순한 'cn'로만 발음하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사람 특성 따라, 지역 따라 조금씩 다른 것 같다.

영어를 공부하면서 제일 어려운 부분은 역시 억양이다. 토토로 조카님은 이것을 아무 생각없이 몸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억양이 정말 자연스럽다. 그러나 나는 영어를 받아들일때 문자 위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문자화 되지 않는 억양은 정말 최고난이도다.

can 과 can't도 억양에서 큐를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can't는 의미면에서 강조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주변 억양도 살짝 달라지는 것 같은데,
아직 그 미묘한 차이를 모르겠다. 도대체 언제쯤 되어야 중학교 수준을 넘어설 수 있게 되는 것일까............................. 오늘도 된장..ㅋㅋ

Friday, October 22, 2010

김연아의 위엄2.jpg (사진추가)




영문 텍스트하고 서론부분 사진, 뒷표지 사진도 추가요 ^^

Yu-Na Kim had been working her way up the ladder steadily for several years, and in 2009, she reached the top of the world.

With a nearly flawless routine, she won the World Championships gold medal in Los Angeles, thanks to her graceful, flowing style combined with perfect jumps and landings.

Yu-Na was a five-time National Champion in her native South Korea. In fact, she was only 12 when she won that title for the first time!

In 2006, she became the first Korean skater to win a wirld title when she became the World Junior Champion. That year, she moved to Canada to train with former Canadian superstar Brian Orser.

Brian helped Yu-Na add some difficult jumps to her routines. They developed a type of camel spin that has been named after her, the Yu-Na spin.

The long hours they worked together in the rink paid off. In 2007 and 2008, Yu-Na was the bronze medalist (third place) in the World Championships.

Since 2006, figure skating had had a points-based judging system that rewards success and style. At the World Championships in 2009, Yu-Na set a new record with a short program (first round) score of 76.12, and she performed beautifully in the final free skate. Her final total of 207.71 points made her the first to top 200 points under the new system. Yu-Na proudly brought her Championship medal back to Korea. Will she be carrying more medals beck home from the Winter Olympics in 2010?

(출처) Skating Superstars - Scholastic 발행

아동용 paperback book 이긴 하지만 미국 아이들이 연아를 보고 꿈을 키울걸 생각하니 뿌듯뿌듯 ^^

Thursday, October 21, 2010

김연아의 위엄.jpg

 



이번 주 내내 토토로 조카님 학교에서 Book Fair가 열렸는데 오늘에야 갈 수 있었다.
도서관에 들어가 이리 저리 책을 둘러보고 있던 중 Skating Superstar란 제목의 책이 눈에 띄었다.
토토로형님 가족은 모두 연아느님 팬임 ㅎㅎ..
미국 책이지만 당연히 연아도 있겠지 하는 혹시하는 마음에 표지를 들춰보니 아니나 다를까 ㅎㅎㅎ
토토로 형수님을 불러 이것좀 보라고 했더니 한순간 망설임 없이 "이건 사야해!!" 하며 들고가신다.
번역을 해서 디씨 연아갤에 올려야 한다는 둥둥 흥분하셨다.

토토로형님은 휴대폰을 꺼내 책을 펼치며 촬영 시작, 블로그질을 위한 득템에 성공.

토토로형수님은 공부할 게 너무 많아서 블로깅이 힘들 것으로 판단, 토토로형님 과감하게 먼저 블로깅을 해본다.
얼마전 LA 아이스쇼가 공중파인 NBC를 통해 방송된 것을 보면서 뿌듯해 하던 게 기억난다.
중간 광고가 무려 Sparkling Korea, Seoul 등이 번갈아 나오면서 한국을 알리고 있었다.
김연아가 대통령보다 외교관보다 훨씬 낫구나 싶었다.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김연아가 잘 이겨내고 내년 3월 다시한번 Yu-na Queen 이란 헤드라인을 봤으면 한다.
Posted by Picasa

Tuesday, October 19, 2010

평행주차 (parallel parking)

토토로 형수님이 미국에서 운전면허 따는 데 가장 난관이 바로 평행주차 테스트였다.
나름 감각적으로 운전해오던 토토로 형님도 그냥 하면 되던 평행주차를 이론적으로 설명하려니 대략 난감...
그냥 하면 되는데..

뭐 사실 이론적으로 아무리 설명했어도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쉽지 않은게 사실.
역시 왕도는 없었고 기름 게이지 떨어지는게 보일 정도로 연습에 연습을 해야 했다.
(참고로 우리차 연비는 8Km/l ㅜㅜ)

서핑 중에 유튜브에 올라온 평행주차 방법이 있길래 몇가지 올려본다.
평행주차로 고민하시는 분 있더라도 참고만 하시면 될 것 같다. 실전이 최고

ps: 쓰고나서 생각해보니 요즘엔 차가 알아서 평행주차를 하더라 ㅡㅡ;;


요건 정석. 참 디테일 하시다.



요기서부턴 재미삼아 ^^

거길 꼭 들어가야하나?


요렇게 들어가면 되지


요런 장치 달린 차들이 나오고 있지요


평행주차 끝판왕 (타이어 다 닳겠다)

피할 수 없는 mom's brain


출산 후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일명 '비밀의 문' (그 문을 지나기 전까진 생각나다가 지나면 내가 왜 문을 지나갔는지 까먹게 되는..) 현상은 토토로 조카님이 생기기 3년전부터 있었던 일이다. 예전엔 기억력이 꽤 좋아서 신랑하고 싸울 때, 남 돈 빌려줬을 때, 뭔가 챙겨야 할 때 아주 유용했지만, 이제는 나 스스로도 나를 전혀 신뢰할 수 없어 수첩에 적고, 구글 칼렌다에 적고, 온갖 군데에 메모해 놓고, 어디 메모해 놨는지 까먹고 있다..
그래도 오늘은 토토로 조카님 탓하고 싶었다.

아침에 8시 반까지 랩에 나가야 하는데 30분이나 지각했다. 이유는 '열쇠 꾸러미'를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집, 랩, 컴퓨터 실, office, 학교 건물, 그리고 우체통 열쇠가 다 들어 있는 '꾸러미'를! orz...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었다. 어디에 두었더라.. 어디에 두었더라?? 워낙 기억력이 깜빡깜빡해서 왠만하면 항상 같은 곳, 아니면 비슷한 동네에라도 두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열쇠 못 찾으면 학교 다녀와서 찾으면 되지 싶기도 했지만, 너무 하얗게 생각이 나지 않아서 이러다 영영 잃어버리는거 아냐 살짝 무서워져 출근할 수 가 없었다.. 결국 그냥 학교에 가서, 친구들한테 랩 문 좀 걸지 말라 부탁하고 하루를 살았다. 이대로 그냥 안 나오면 어떡하지.. 공부가 안 된다...(에라이.. 핑계가 또 생겼다..)

마지막으로 열쇠를 쓴 것은 지난 주 금요일 집에 들어갈 때 .. 온 가족이 장을 보고 들어오는 길이라 손에는 장바구니가 주렁 주렁.. 평소 열쇠사용을 동경하는 토토로조카님에게 아량을 보이는 척, 열쇠를 주고 문을 열어 달라고 했었다. ..그리고 열쇠는 기억속에서 사라졌다.. 이제 믿을 것은 토토로조카님의 기억력 뿐이다..

오후 4시가 되어서야 스쿨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토토로조카님. 아............하루가 길구나..

띠리링~
4시가 조금 넘어 집에 전화를 했다."혹시 열쇠 찾았어?"
신랑 왈 "어, 다람쥐가 물어갔었어". 뭐라구!!! (내 마음속의 절규) "딸 바꿔 봤!"
"딸아, 네가 엄마가 열쇠잊어버릴까봐 잘 두었었냐?" 언제나 당당한 우리 딸래미 "아니오, 내가 엄마 서프라이즈 해 줄라고 XXX(어딘지 아직도 모르겠다)에 잘 넣어두었어요" !!! 딸아~ (tada!의 억양으로..ㅠ_ㅠ)

하도 깜빡깜빡하는게 심해서 출산후에 이런 것이 심해졌다고 했더니, 영어로는 'mom's brain'이라고 하면 통한다고 과 친구가 알려줬다. 한국말로는 이런 말이 있는지 모르겠다. 우쨌거나.. 오늘의 mom's brain 사건은-- 100% 내 탓은 아닌거였다 ...호호호....

이렇게 하고 하루를 마무리 하고 싶었다.. 젠장.. 저녁 먹고 소파에서 잠들었다가 깨서 안경 찾는데 한 시간 십분 걸렸다.



Monday, October 18, 2010

토토로 형님 취향

다섯살 토토로 조카님은 책읽기를 너무 좋아하는데 그렇다고 모든 책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요즘엔 디즈니 공주, 바비, 도라 캐릭터가 나오는 책들을 제일 좋아한다.
아직 혼자서 책을 잘 읽을 수 있는 나이는 아니기때문에 주로 토토로 형수님과 토토로 형님이 읽어준다.

토토로 형님은 읽는 사람 입장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좀 재미있어야 읽어주는 보람을 느끼는 것 같다.
지금까지 읽어 준 책 중에서 인상에 남는 게 있어서 몇자 적어본다.

세계 명작동화인데 80년대 초반에 발행된 것들이다.

집에 있는 책은 아니고 교회 도서관에서 빌려본 책들인데,
그림이 정말 아름답다고 표현하고 싶다.
내용은 아이들 수준에 맞춰 각색한 것이 아닌 그림형제 원작 내용을
그대로 살려 약간은 아이들에게 어렵고 잔인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토토로 형님이  좋아하나보다. ^^

구글링으로 찾은 이미지들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이건 마법으로 변신한 신데렐라

요건 공주가 된 신데렐라


책에 보면 화가 이름도 있어서 한글로 영어로 찾아봤지만 오래된 책이라 그런지 찾기가 어려웠다.

Saturday, October 16, 2010

Goodreader vs. Iannotate- ipad에서 pdf 읽기에 더 좋은 것은?

ipad의 큰 매력중의 하나는 전자책 기능일 것이다.
나도 이 매력 때문에 ipad를 구매했다. 특별히 애플의 이북이나 아마존의 킨들이라기 보다는 많은 articles을 읽어야하기 때문에 나는 PDF 뷰어가 필요했다.
그리고 나는 아티클 위에 형광펜으로 줄 칠 수 있는 기능을 찾고 있었다. 사실 이것이 넷북이나 큰 모니터의 pc보다 ipad를 선택한 이유였다. 마우스로 형광펜 줄치는 것은 왠지 그야말로 AWKWARD하다...

그래서, ipad를 사자마자 내가 한 일은 pdf 뷰어 찾아보기.

ipad에는 다양한뷰어들이 있다. 먼저 Goodreader, iAnnotate, cloudreader 그리고 Stanza...아마 예상컨대 이 보다 훨씬 더많은뷰어들이 있으리라고 본다. 위에 거론한 네 개중 앞의 두개, Goodreader와 iAnnotate는 유료버전이고, 뒤의 두개는 무료버전이다. Cloudreader는 잘 모르겠다. Stanza는 애플의이북이 제공하는 무료 책들은 대부분 다운받아 볼 수 있고, 무료책임에도 불구하고 칼라나 삽화가 더 많이 들어 있는것 같다. 그리고 유료 버전들의 리뷰들을 읽어보니 Goodreader와 iAnnotate가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이 중 형광펜으로 줄을 칠 수 있었던 것은 8월 당시에는 오로지 iAnnotate뿐... iAnnotate은 당시 9.99불.. Goodreader는 1.99불.. 그런데 Goodreader의 평도 꽤 좋단말이지..?

소심한 아줌마는 Goodreader 가격이 더 올라간 담에 후회하지 않기위해 두 어플을 모두 구입하는 주책을 저지르고 만다.......

그리고 집에 있던 컴터에서 모든 pdf화일을 iAnnotate로 옮겨 꿈에도 그리던 손가락으로 pdf에 형광펜 칠하기를 하면서 가을학기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Goodreader에서 업뎃을 했다. 그리고 이 1.99불 짜리 어플에서도 형광펜, 펜, 노트하기 같은 주석달기가 가능해진 것이다!

그리고 iAnnotate보다 형광펜 칠하기 스텝이 하나 더 적어 더 빨리 진행할 수 있다.

말하자면, Goodreader에서는 (1) 손가락을 데고 있으면 (2) 형광펜을 선택할 수 있는 탭이 바로 나오고 (3) 영역을 지정하면 바로 형광펜이 칠해진다. 그리고 나서는 바로 (4) 후행 읽기가 가능하다.

iAnnotate은 (1') 손가락을 데고 있으면 (2')마킹을 선택하는 탭이 나오고 그 다음에 (3')형광펜을 선택하고 그리고 (4') 영역을 지정하면 형광펜이 칠해진다. (5') 형광펜 모드를 해제한 뒤 (6') 다음 화면으로 움직일 수 있다. 별 차이 없는 것 같지만 이 작은 스텝들이 가뜩이나 머리 아픈 영어독해의 순항을 가끔은 심하게 방해하는 것이다. 물론 설정된 아이콘들을 이용하면 스텝은 짧아지지만 집중하고 있는 초점이 잠시 이동해야 하는것이 방해가 되기도 한다..


거기다 화면 확대, 축소, 그리고 이동할 때 반응 속도도 Goodreader가 더 빠르다. 그리고 이 어플은 pdf뿐 아니라 워드 화일이나 사진 화일도 보는 것이 가능하다..

아욱.. 그래서 요즘 나는 9.99불짜리 어플을 사 놓고도 1.99불짜리 Goodreader을 사용하면서 돈을 아까와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겠는가.. 8월달엔 Goodreader가 형광펜은 정녕 지원이 되지 않았단 말이다...


Friday, October 15, 2010

Bilingual 딸래미의 말습관

토토로조카님은 그 이름도 자랑찬 바이링구얼--bilingual. 2년 반 전에 처음 올때는 어떻게 적응을 할까 걱정도 많았지만, 이제는 영어랑 한국어를 나름 소용이 닿는대로 맘껏 사용할 수 있는 이중언어아동이다. 아직까지는 그러하다. 여름방학동안에 언어학과 박사과정 학생이 하는 이중언어연구 실험에도 참여했었는데 제법 높은 수준을 보였다고 한다.. 영어에서.

그러나, 미국에서 살면서 한국말도 잘 하고 영어도 잘하는 것은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토토로조카님은 이제 만 다섯살. 다행히 한글도 제법 읽을 줄 알고 책을 무척 사랑한다. 그래서 혼자 앉아 책을 읽는 것이 그녀의 주된 낙이다. 그런데 어느날 "엄마~"를 불러댄다. "왜?" 엄마가 답한다. "그런지 손자가 뭐예요?" "뭐? 그런지 손자? 그게 뭐야?" .. 황당황당 'grunge'를 물어보는건가? 그렇게 영어랑 한글이 같이 나올 일은 거의 없는데.. 궁금하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해서 방으로 달려가본다. "그런지 손자가 뭐야? 엄마도 모르겠네?" .. "여기요... 여기 책에 그렇게 써 있어요.."하며 보여준 것은 왕자와 공주들의 이야기가 가득 찬 동화책.. 한 할아버지 임금님이 혼기가 찬 왕자에게 결혼을 재촉하며 말하는 장면이다. ".... 늙어서 그런지 손자가 보고 싶구나"...........아.......... 그런지 손자.. '늙어서'도 알고 '손자'도 알지만 '그런지'는 모르는 우리 딸래미... 그런데.. 가르쳐 주기가 영 쉽지 않구나.....딸아!

영어문화권에 살면서 경험하는 생각지 못한 일상중 하나는 '내 집, 내 아빠'. 한국어로는 '우리 집, 우리 아빠'이지만, 영어로는 'my house, my dad'이라 그런지 토토로조카님은 친구에게 "내 아빠에게 물어볼께", " 내 엄마가 그래도 된다고 했어" 같은 특이한 말습관을 보인다. 물론 동네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이 아이들은 머리속에서 언어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한 가지 더, 이해가 가면서도 열받는 것은 뭔가 다시 말해 달라고 할 때 말하는 "뭐라구요?" 이다. 이걸 그냥 국어책에 나오는 "뭐라구요?"라고 받아들인다면 곤란하다. 이 장면은 미국만화영화에 나오는 캐릭터가 약간 인상을 쓰면서 억양을 화악~ 올려가며 말하는 "what?"의 느낌을 가득 실어서 말하는 "뭐라구요?"인것이다. 한국어로야 "네?"하면서 반짝반짝 슈렉 고양이처럼 쳐다보아야 하는 그 장면에서 갑자기 "Whaaaaaaaaaat?" 억양과 눈빛의 "뭐라구요?"를 들으면 이해하는 만큼 혈압상승이 급작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 더. "엄마, 이것 해 줄 수 있어요?" 이 존댓말은 미국인의 당당당 포스와 함께 연상해야 정확하게 상황을 이미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 표현과 정서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바로 "Mom, can you please do this?" ... 아무리 가르쳐도 "엄마, 이것 좀 해 주세요"라는 말은 할 줄을 모른다. 도대체.. 머리속을 이해할 수도 없고, 이제 모국어가 제2언어에 추격당해 가고 있다는 것이 확연히 느껴진다...

그런데 어떻게 영어가 이렇게 번역한 듯이 한국어에 덧입혀지는 것일까? 신기하기 짝이 없다...

Metallica - One





옛날엔 그냥 사운드가 멋지고 좋아서 가사 뜻은 생각해 볼 여지도 없이 들었었는데
아침에 우연히 라디오에서 나오길래 끄적여본다.

가사를 좀 음미해보자
번역은 의미 없을 것 같고 주제는 전쟁이 개인에게 주는 고통 쯤 되겠다.

가사 내용은
전쟁에서 큰 부상을 입은 한 사람이
피폐해진 영혼과 육신을 견뎌내지 못하고
죽고 싶지만 죽을 수 도 없고
그렇다고 살기엔 너무나 고통스런
상황을 노래하고 있다.


(가사 원문)
I can't remember anything
Can't tell if this is true or dream
Deep down inside I feel the scream
This terrible silence stops it there

Now that the war is through with me
I'm waking up, I cannot see
That there's not much left of me
Nothing is real but pain now

Hold my breath as I wish for death
Oh please god, help me

Back in the womb it's much too real
In pumps life that I must feel
But can't look forward to reveal
Look to the time when I'll live

Fed through the tube that sticks in me
Just like a wartime novelty
Tied to machines that make me be
Cut this life off from me

Hold my breath as I wish for death
Oh please god, wake me

Now the world is gone I'm just one
Oh god, help me

Hold my breath as I wish for death
Oh please god, help me

Darkness imprisoning me
All that I see
Absolute horror
I cannot live
I cannot die
Trapped in myself
Body my holding cell

Landmines has taken my sight
Taken my speech
Taken my hearing
Taken my arms
Taken my legs
Taken my soul
Left me with life in hell

Thursday, October 14, 2010

ipad 화면 문제 발생! T^T

여름 방학이 끝나갈 무렵 지름신이 내리셔셔 ipad를 지르고야 말았다. 학생의 신분이라 겸손하게 Wi-fi로.. 한 열흘 기다렸나? ipad본체보다 늦게 주문한 케이스를 먼저 받고 8월 중순이 시작되기 전에 ipad를 받고 나는 유학생활의 새로운 세계로...ㅋㅋ

작년 여름에 무게를 핑계로 산 넷북은 사실 학교에 들고다니는데는 여전히 번거롭고 불편하다. 아무리 가볍다고 해도 사실 여전히 하드커버 교과서 한두권 정도의 무게는 너끈히 나가시는 것 같고, 거기에 하루종일 일하려고 들면 아답터까지.. 그리고 화면이 작아서 아티클 읽기에는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ipad가 나오고, 내 책가방은 정말 가뿐.. 넷북에 담아 놓았던 온간 페이퍼들을 몽땅 ipad에 저장해 놓고 필요하면 찾아 읽을 수 있다. 대략 300편 이상의 페이퍼를 옮겨 놓았지만, 늘 가방의 부피는 일정한 것이다. 누구는 들고다니기에는 어쩌고 저쩌고 하기도 하지만, 정말 넷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무게고, 도서관에서 분실이 두렵워 화장실에 가지 못할 일도 없다. 그저 들고 화장실 가면 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밤에 졸려서 침대에 누워서 옆에 자는 사람 방해해 되지 않게 불을 다 끄고도 페이퍼를 읽을 수 있다는 점!!

대부분은 페이퍼를 읽는데 사용하고 있지만, 토토로 조카님의 심심풀이 오락기로도 사용되고, ebook을 다운받아 놓고 영어실력 향상을 도모하기도 하고, 토토로 조카님의 그림장으로도 십분 활용이 가능하다. 옆의 사진은 활용의 예, 마지막 사진은 세상에서 젤루 사랑스러운 토토로조카님.. ^^ 이 사랑스러운 기계를 겸손히 졸업할 때 까지 열렬히 사랑하며 살기로 그 얼마나 다짐했던가!!!

그런데!!!
오늘 학교 랩에서 ipad를 켜고 goodreader를 여는데, 이것은 왠 푸른 바다? 하얀 페이퍼에 단정한 검은 영어들의 고운 자태는 어디로 가고 왠 푸르딩딩한 색깔? 이상해서 goodreader를 닫았더니 이번엔 붉은색 물결이 죽죽 흐른다. 켁. 이게 무신 사태란 말인가. 껐다 켰다를 반복하고, 내가 얘를 그렇게 혹사시켰나 마구 반성도 해 보았다. 그리고 신랑에게 '이 무슨 기막힌 사태란 말인가' 전화 한 통하고나서 웹을 검색했더니 몇 몇 사람들이 screen problem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올려놓았다. 대부분 애플에 전화해서 replacement 받았다고 올려놨네... 그럼 전화를 해 봐야하나? 이런 일이 혹시 오늘 나아지더라도 또 생기면 어쩌지?

띠리링, "hello" 오.. 전화 잘 받네. .. 켁 ARS다. 쏼라쏼라. 무신 소리야? 말 안하고 가만히 있었더니, '너 말했냐? 너무 작아서 안 들렸나 보다. 다시 말해봐라' 그러면서 뭐라고 또 쏼라댄다. 대강 들어보니 문제를 말하면 technical support하는 사람한테 전화 넘겨 준단다.
"I have a screen problem on IPAD." 이게 맞는 영언가, 녀석이 알아들어줘야 할텐데 하면서 기계의 반응을 기다린다..
쏼라쏼라~ 오.. 녀석, ipad를 크게 말했더니 그건 들었나 보다. 담당부서로 넘겨준다.

담당부서 사람(으. 이름 까먹었다.)이 받더니 serial number 물어보고 (setting들어가면 general에 나와있다) 내 데이터 찾아서 보더니, 일단 itune 접속해서 자료 다 백업하고 다시 restore를 해 보란다. Neutralize 시키느라 그런거라는데 무신 얘긴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러고도 계속 화면 문제가 생기면 replace해준단다.

다행히 1시간 정도 그렇게 지글지글 화면이 나타나더니 어느 순간에 사라졌다. 그렇지만 왠지 찜찜하다. 졸업 전에 망가지면 안 되는데.. ipad warranty기간은 구매후 1년이란다. 오로지 페이퍼 reading용으로만 애지중지 다뤄야하나, 아니면 더 강하게 조련하면서 warranty기간안에 문제를 해결해내야 하나. 아.... 내일 수업도 있는데 머리가 복잡해진다............

Squirrel Park Sunset


해질녘의 집앞 공원이다.
놀라운 건 5살 딸래미가 찍었단 사실.
나보다 낫다 ^^
Posted by Picasa

Wednesday, October 13, 2010

가을 야구


2연패로 시작하며 마음을 식게 만들었지만
곰의 끈기로 이겨 나가며 가슴 벅차게 했다.

실수와 패배는 늘 아쉽지만 딛고 일어나는 모습이 감동적인거다.

김현수, 고영민, 이성렬은 더 성장한 모습으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손시헌은...
그가 없었다면 포스트 시즌의 감동은 없었을 것이기에 만족한다
임태훈...
무너지지 말고 툭툭 털고 이겨내길 바란다..